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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LIN NEWs/My story

홍유릉에서 휴식을 취하다~





일정때문에 멀리 갈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군요~

가끔 너무 덥거나 할때 찾는 홍유릉입니다..

 

 잔디밭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좀 보면서 시원한 물한잔 마시는것이 지금 유일한 피서방법!

 

9월경에..  부산에 갈예정인데..

그때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번 올려볼께요!

 

 

 

그럼 홍유릉은?

 

홍릉조선 제26대 고종과 그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의 능이며, 유릉은 조선 제27대 왕 순종과 그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와 계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의 능이다. 조선 왕릉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으며, 양쪽으로 문무석을 세워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 등의 석수를 세웠는데 중국 황제의 제도를 따른 것이다.

 



 

강제 병합 후 일본이 정한 왕공가궤범 제200조에는 왕·공족의 분영은 묘로 한다王公族ノ墳塋ハ之ヲ墓トス 라고 되어 있다. 왕의 무덤인 능陵도 세자의 무덤인 원園도 아닌 일반인의 무덤인 묘墓로 격하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왕공가궤범을 따르자면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왕릉이 될수 없었는데, 이때 왕실에서 생각해낸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의 유릉이었다. 고종의 장례 때는 명성황후의 재궁을 원 홍릉(청량리)에서 현 홍릉(남양주시)으로 옮겨와 합장하였고, 순종의 장례 때에도 구 유릉(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순명효황후의 재궁을 모셔와 합봉(남양주시)하였다. 새로운 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능의 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제로서는 이것을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었으며, 능의 이장 문제 또한 이왕직이나 총독부가 관여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실 내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처리되었다.

그러나 본래 왕릉 장법에서 왕비의 능에 왕을 합장할 경우엔 새로운 능호를 쓰게 되어 있다. 중종이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옆에 같이(이때의 경우 한 구역 안 두개의 능침이라 하여 동원 이강이라 한다. 봉분은 따로 떨어져 두개이지만 제사는 한 정자각에서 받는다)안장되었을 때 희릉의 능호를 같이 쓸 수 없다 해서 정릉으로 능호를 새로 올렸던 전례가 있고, 숙종은 인현왕후의 능에 묻을 것을 미리 지시했기 때문에 인현왕후의 능호인 명릉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이 경우는 봉분이 붙어있어서 쌍릉이라고 한다). 원래 왕릉 장법에 따르면 새로운 능호를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의 간섭으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조선 왕실에도 이런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헌종의 경릉敬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