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T STORY/Focus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되살아난 70년대 포르노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0년대 초는 포르노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변혁기였다. 현재는 포르노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1972년 '목구멍 깊숙히'(deep throat)라는 영화가 상영됐기 때문이다. '목구멍 깊숙히'는 지금도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영화사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표면상으로는 성표현의 자유를 영화라는 양식을 통해 외쳤다. 하지만 실제론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욕구표현이었다. '목구멍 깊숙히'라는 제목이 의미한 것이 오랄섹스였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목구멍 깊숙히'는 포르노영화가 산업적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5,000달러의 제작비로 6억달러의 수익을 냈다는 흥행기적은 누구나 포르노시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시대의 포르노산업이 과잉 무한경쟁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해도 포르노 본연의 꿈은 '목구멍 깊숙히'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목구멍 깊숙히'의 신화는 사실 이미 끝나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화려한 명성의 대를 잇고 있다. '목구멍 깊숙히'를 신호탄으로 쏟아져 나온 70년대 포르노들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디지털 복원이니 감독 특별판이니 하는 그럴듯한 수식어들이 붙어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포르노는 고사하고 에로영화조차도 자유로운 성표현이 허용돼 있지 않다. 그 누구도 기준을 판별할 수 없는 예술적 의미를 운운하며 제한적으로 외국영화에 한해 음모나 성기노출을 허용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70년대 포르노영화들은 강렬한 기억으로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

1970년대 미국 포르노는 10년 후인 1980년대 초쯤 한국의 포르노 암시장에서 뒤늦게 빛을 봤다. 당시 포르노 메카였던 청계천의 후미진 뒷골목과 만화가게로 위장한 서울역 앞의 포르노극장을 휩쓸었던 것이다. 제목도 주연 여배우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당시 포르노들은 웃지못할 추억을 남겨주기도 했다.

포르노 영화 시작 직전에 나오곤 했던 'FBI WARNING'이란 자막을 누군가는 제작사의 이름으로 오해하곤 했다. 심지어는 '왜 미국은 FBI에서 포르노를 만드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던가. '목구멍 깊숙히'를 비롯해 1970년대 포르노를 다시 선보인 주역은 다름아닌 제작사 '애로우 프로덕션'이다.

'목구멍 깊숙히'의 여주인공 '린다 러브레이스'는 2002년 이미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철없던 시절 남편의 협박으로 찍었다는 포르노는 아직도 시간이 멈춰진 상태로 인터넷에서 더 좋은 화질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보면 영상기록의 힘이 새삼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목구멍 깊숙히'는 그 명성으로 인해 동명의 시리즈를 꽤나 많이 생산해냈다. 한국의 전설적 에로영화 '애마부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목구멍 깊숙히'는 6편까지 있다. 흥미로운 점은 6편의 표지를 보면 여성이 무려 3명이나 등장하고 그 중 한명은 동양여성이란 것이다.

'데비 도즈'의 '댈러스 어게인'은 미국의 유명 미식축구팀 '댈러스 카우보이'의 치어리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포르노는 남자의 환상을 영상으로나마 실현시키는 것이다. 1970년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포르노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리 현대인들이 성적으로 날고 뛴다해도 그것은 모두 과거의 사람들도 해봤던 짓들이란 것이다.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